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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에게 밥을 산다

jyanshi: 
categoryStory: 

지갑을 어루만져 본다. 최근엔 좀 여유가 있는 편이니 밥을 사기로 했다. 나는 앞으로 두 걸음 걸어나가 에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그에게 제안을 건넸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걸, 오늘 점심은 내가 쏘지. 와아! PLAYER, 너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아, 근데 이렇게 빌붙은 걸 영감에게 들키면, 얻어 맞을텐데. 자식이 밖에 있으면 부모님 말을 안 들을 때도 있는 법이지. 말은 그래도 좀 미안하네. 대신 내가 심부름이라도 해 주는 건 어때? 지금은 딱히 도와줄 일이 없는데, 그럼 먹으면서 생각해 보자. 하지만…… 꼬르륵──, 이번엔 나의 뱃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는 혼천신사에 밥이나 얻어먹으러 갈 계획이었지만, 이곳에서 에인을 만나 때를 놓칠 줄은 몰랐다. 음…… 에…… 그럼, 역시 밥부터 먹으러 가자, 마침 이 부근에 아주 괜찮은 라멘집이 있어. 에인의 안내로 우리는 옆 골목에 위치한 눈에 띄지 않는 라멘집에 들어섰다. 가게는 크지 않았고, 테이블과 의자는 어딘가 낡아 보였다. 실내는 농후한 라멘의 향기가 맴돌아 어딘가 집 같은 느낌도 들었다. 너 혹시 이한시 음식점에 대한 최고의 평가가 뭔 줄 알아? 미쳐버린 맛? 아니, '여기 집밥 먹는 것 같아' 이거야. 그럼 악평은? 집에서 먹는 거나 다를 거 없네.' 이한시의 문화는, 정말 넓고도 깊구나…… 그렇게 얘기를 나누던 중, 에인은 이미 날 데리고 재빠르게 좁은 통로를 지나 빈 테이블을 찾아서 앉았다, 그리고 옆에 끼워져 있던 메뉴판을 집어들곤 내게 건넸다. 여기 단골이야? 삼, 사일에 한 번씩 와서 먹는 정도야.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돈코츠 라멘을 추천할게. 믿어봐, 집밥의 맛이 느껴질 거야. 그럼 시그니처 라멘 두 그릇으로…… 오? 이번엔 친구를 데려왔네. 독고다이 형씨, 나이스해! 오늘은 반숙 계란 두 개 서비스로 줄게.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우람한 남자 하나가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아기 곰이 그려진 앞치마를 두르고 우리의 앞에 서 있었다. 만약 그가 갈색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고, 걷어 올린 소매 아래 큰 문신이 없었다면, 그가 라멘 가게의 사장이라는 것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사장님, 땡큐. 아, 맞다. 오늘 일하다 자꾸 안 좋은 일이 터져서 그런데, 심부름 해 주기로 했던 거 내일로 미룰 수 있을까요? 우람한 사내는 그저 말없이 에인을 향해 OK 사인을 보내고선 자리를 떠났다. 진짜 라멘 가게 사장님이야? 하하, PLAYER, 내가 처음 사장님을 만났을 때의 반응이랑 똑같네. 사장님은 확실히 불량했던 때도 있지만, 지금은 정말로 그냥 라멘 가게 사장님이야. 이 가게에서 쓰는 면도 직접 만드시는 거야? 당연하지. 이 라멘 가게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이곳은 사장님의 사냥터야. 마치 PLAYER, 너의 사냥터가 마작장인 것처럼. 사냥꾼이 자기 사냥터에서 실수할 리가 없잖아. 과찬이야, 나도 사냥터에서 방총 한 번이면 32000점 이라고. 하하, 그건 상대방을 유혹하려는 네 계책 같은 거 아냐? 우리 사냥꾼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있어. "사냥 고수는 이따끔씩 사냥감의 형태로 나타난다". PLAYER,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 용기와 지략을 갖춘 사람. ……울고 싶네, 정말. 음식 나왔네! 손님들, 주문하신 시그니처 돈코츠 라멘, 맛있게 드시게나. 사장님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내 앞엔 두 개의 거대한 라멘 그릇이 놓였다. 뿌연 우윳빛 국물, 굵기가 일정한 면발, 잘게 썰린 파가 만들어 낸 군침 돌게하는 냄새가 얼굴을 덮쳐왔다. 특히 그릇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둘러진 목살 차슈는 적절한 두께에 육즙이 살아 있었다. 이 정도로 양이 많은 라멘집은 이한시 전체를 뒤져봐도 다시 찾기 힘들 것이다. 사장님의 얼굴조차 이 라멘 덕분에 자상해보일 지경이었다. 후── 앗 뜨거!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사장님의 라멘을 먹는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 너무 쉽게 만족하네. 사실 가성비 좋은 또 다른 가게를 아는데, 다음엔 내가 거기서 한턱 살게. 에인은 이한시를 굉장히 잘 아네. 응, 좋아하니까. 어째서? 이 도시는 넓은 포용심과 공평함이 있어. 출신과 외모 때문에 열심히 일한 사람이 배척되지 않지. 게다가 이곳은 사냥터도 크고 많아서 모든 사냥꾼들이 마음껏 달리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어. 나중에 우리 부족 사람들도 여기 와서 봤으면 해, 사냥터의 속성은 정의되어선 안 돼. 사냥꾼의 능력도 무시 당해선 안 되고. 매일 이한시에 있다보니 별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네 말을 들으니까 어째선지 나 자신이 '이한시의 모범 시민'이라는 사실에 피가 뜨거워지는걸! 피가 뜨거워진다고? ……워워워워── PLAYER, 그 뜨거운 건 국물이 몸에 쏟아져서 그런 거라고! {var:Shake} 사장님, 사장님! 수건!!! 에? 에에에에에에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후, 옷에 묻은 국물을 대충 닦아내었다. 그리고 자상한 사장님께서 국물도 무료로 추가해 주셨다. 그러니까, 역시 밥을 먹을 땐 무슨 피가 끓어오른다니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격분하면 쉽게 그릇을 뒤집어 버릴 수 있으니까…… 비록 식사는 순조롭지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은 그래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으아── 배불러, 오늘 목숨은 PLAYER에게 받았네. 그 정도는 아냐, 우리 사이에 뭘. 힘들 때 함께해야 진정한 친구지. 네 말이 맞아, 힘들 때 함께해야 진정한 친구인 법이야. 맞다, 내가 뭘 해 주면 좋을지 생각해 봤어? 음…… 아직은 없네. 하하, 그럴 줄 알았어. 다행히 내가 미리 준비해 뒀지. 에인은 주머니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네 주었다. 아마도 방금 식당에서 한참 무언가를 쓰고 그려대던 종이인것 같다. 건네받은 것은 '무료 고용권'이었다.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고용주 PLAYER, 본 고용권을 사용하여 에인에게 한 가지 일을 무료로 맡길 수 있음. 실력 보장, 임무 완수. 에인 하하, 무슨 불법 계약서 같은 느낌이 돼 버렸네. 쯧,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그런 느낌이네. 하하. 하지만 이건 일회용이야. 잘 생각해, 절대, 절대로 여우 털로 장갑 만들기 같은 용도로 쓰지 말고. ……내가 엘리사도 아니고. 알지 알지, 넌 당연히 엘리사가 아니지. 넌 내 가장 좋은 친구잖아, PLAYER.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대낮에 이런 닭살 돋는 진담이라니. 좀 쑥스러워진다. 이제 다음 계획은 뭐야? 나랑 같이 혼천신사에 가서 마작이나 할래? 재수가 꼬였는데 무슨 마작이야, 국사무쌍에다가 구련보등까지 당하게? 집에서 안전하게 오늘을 보내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오늘의 비참하고 불행한 운명이 떠올랐는지, 에인은 귀가 다시 쳐졌다. 난 더이상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만 여기서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한 시간 후 론! 국사무쌍 멍! 고맙다, PLAYER. 8분 후 론이다냥, 대냥원! 역시 주인이다냥, 고맙다냥. 6분 후 우히히, 론! 구련보등 고맙구나, PLAYER. 나는 얼굴에 흐르던 식은 땀을 닦으며 에인으로부터 받은 주머니 속의 '무료 고용권'을 만지작거렸다. 이 녀석…… 혹시 에인의 불행이 나한테 옮겨온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