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소속감이 부족하다

jyanshi: 
categoryStory: 

[player]당장 확실한 답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난 이런 불안정한 생활 방식엔 적응하기 힘들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어딘가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으면 힘들지. [사라]후훗,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어려울 거야,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으니까. [사라]아버지는 간신히 뿌리내리는 데 성공한 만큼, 민들레 씨처럼 여기저기 떠도는 생활을 해선 안 된다며, 내가 Soul에서 유랑 공연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어. 딸이 조상들처럼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다신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거지. [player]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한 거야? [사라]사실 처음부터 설득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무작정 “저 갈게요!” 하고 곧장 Soul로 들어가 버렸는데, 전임 단장이던 시드가 이 사실을 알고서는, 나를 아버지께 끌고 가서 나중에 집으로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아버지께서 입단을 허락해 주셨어. [사라]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풀어주신 건 아니야. 지금도 주기적으로 연락 좀 하라고 연락이 오거든. 정말 정이 많으신 분이야, 후후…… [player]하, 하하하……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유랑 공연단으로 딸을 보냈음에도 주기적으로 연락해 달라고만 하다니, 어쩌면 사라의 아버지는 상당한 오픈마인드의 소유자가 아닐까. [사라]주기적으로 연락드리는 게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기분이 좋네. [player]……그럼, 당연하지. [player]그러고 보니 사라…… 이곳 사람들이 날 좀 꺼려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알아? 이건 절대 자의식 과잉이 아니다. 여기에 도착한 뒤로 누군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악의는 아닌 것 같고, 마치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다. [사라]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이곳을 찾아온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있을 뿐이야. 당신이 여기 사람들을 알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사라]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기 전까진 오해가 생기기 쉬우니까, 이들에게도 처음 만나는 사람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해. [player]그런 거였구나…… 나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옷감을 사러 갔을 때 릴리아가 보였던 머뭇거림과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면 서로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역시 관두는 편이 좋겠다. 여기서 나는 그저 한 명의 손님일 뿐, 이런 건 역시 이곳의 '주인'이 결정하는 게 맞다. 또 다시 한동안 동네를 돌아다니던 중, 행인으로 보이는 털털한 성격의 한 여성이 다가와 우리에게 말을 붙였다. [행인]사라, 어떻게 친구를 데려왔는데 나한테 소개를 안 해줄 수 있어? [사라]어머, 마침 딱 소개해 주려던 참이었는걸, 이쪽은 PLAYER씨야. [player]안녕하세요. [행인]안녕하세요, PLAYER 씨라고 하셨나요…… 사라가 이곳에 친구를 데려온 건 처음인데, 사라랑은 그냥 친구 관계실까요? [사라]친구 맞아, 아주 소중한. [player]엥? [행인]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사라]응, 좋아하는 사람. [행인]PLAYER 씨는요? 사라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player]나, 나는 당연히…… 좋고 말고는 말할 필요도 없지, 근데 왜 갑자기 대화가 이런 주제로 흘러가는 거냐! 이런 이야기를 할 거면 적어도 당사자가 있는 자리는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라]당연히 좋아하지. 이 손님은 단 한 번도 내 공연에 빠진 적 없는 내 가장 충실한 팬인걸. 아아, 소중하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어두컴컴한 관중석 사이에 내가 앉아있는 걸 매번 확인했다니, 팬으로서 굉장히 기쁘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저렇게 대놓고 말하니, 왠지 부끄러운 기분도 든다. [사라]나한테 이렇게나 관심을 가져주고, 내 기분을 걱정해주고, 스스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건 이 손님이 처음이에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공연장에 손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적적한 것 같고…… 이런 사람을 '소중한 사람'아니면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행인]응응, 갈수록 확실해지네. 아냐, 그렇게 웃지 마, 분명 뭔가 단단히 오해가 쌓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뭔가 해명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라의 친구는 입을 막고 웃으며 자리를 떴다. 부디 그녀가 우리 관계에 대해 이상한 말을 퍼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player]에구…… 전에는 이렇게 적극적인 나한테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 [사라]이상한 사람은 맞지만, 동시에 소중한 사람이기도 하지, 후후…… [player]……하하, 이상하다곤 해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 주니까 영광이네. [사라]당신이 날 좋아해 주다니 영광이야. 노을이 붉게 깔린 시간, 사라는 어느 한 마차의 문을 열더니 내게 같이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마차 안에는 바느질 작업에 한창인 한 노부인이 앉아 있었고, 사라는 자연스레 그 옆에 걸터앉아 바느질 도구를 집어 들었다. [사라]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노부인 [노부인]왔구먼. [사라]저번에 하시다 말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노부인]아무렴 가능하고 말고. 노부인은 나라는 존재에 큰 관심이 없었고,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여행 중에 일어났던 '삶'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가족…… 한 사람…… 한 부족…… 그리고, 한 부족 안의 어느 가족…… 노부인의 말하는 속도는 굉장히 느렸고, 이따금 본인이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잊어버리거나 뜬금없이 말을 멈추기도 했다. 이럴 때면, 혹시 그녀가 잠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하기도 했다. [사라]할머니, 방금 젊고 멋진 남자아이를 만난 데까지 이야기하셨어요. [노부인]그렇구려, 그때 그 남자아이가 말이여 지금은 벌써 노망난 할배가 되어버렸지 뭐여, 호호호…… 노부인의 말이 끊어질 때마다, 사라는 계속 그녀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친절히 일러 주었지만, 다시 이어지는 그녀의 '여행' 이야기는 언제나 그녀가 자신의 연인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끝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노부인이 입을 떼고 이야기를 할 때만은 그녀의 혼탁하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이렇게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layer ……슬슬 졸린 걸. 날이 저물어감과 동시에 나의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져 갔다. 이윽고 완전한 어둠이 내리고…… 깨어나 보니, 이미 새까만 밤이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 비하여 주위가 부쩍 소란스럽다. 아무래도 밖에 나가있던 사람들이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들 역시 한층 더 농후해졌고, 피어오르는 모닥불 연기에 섞인 향긋한 음식 냄새가 내 코를 간질이며 저녁시간을 알렸다. [사라]어머, 일어났네. 잘 잤어? [player]아주 잘 잤어, 할머니께서 하시는 이야기 듣다가 잠들고 말았는데, 화를 내시진 않았지? [사라]괜찮아요. 잠드신지 얼마 안돼서 할머니도 잠드셨거든요. 걱정하지 마시고, 저랑 같이 저녁 먹으러 가요. 우린 모닥불 옆으로 이동해 릴리아의 일행과 함께 저녁밥을 먹었다. [릴리아]PLAYER 씨, 많이 드세요. [player]고마워, 갑자기 와서 밥까지 얻어먹어 버렸네, 미안해. [릴리아]괜찮아요. 아무렴, 사라 언니의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 그 친구라는 사람, 결국엔 죄다 퍼뜨리고 말았구나. 식사 자리에서 사람들은 서로서로 음식을 가져와 나누고, 건배를 하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사라가 말했듯 이곳의 모두는 마치 거대한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방인'들은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내가 자신들의 만찬에 참석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고, 반대로 놀랄 정도로 친절히 나를 맞이해주었다. [player]따듯함이 느껴져. 밥도 엄청 맛있고,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밤을 맞이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어. [사라]나도 이곳으로 당신을 데려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 [player]저녁식사가 끝나면 아까 할머니께 듣던 걸 마저 들으러 갈 생각이야? [사라]할머니께선 아직 주무시고 계셔서 아무래도 깨우지 않는 게 좋겠어. 게다가 모으고 싶었던 소재들도 거의 다 모았으니까 만약 할머니랑 다시 대화하고 싶다면 이한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리는 것도 괜찮겠다. [player]소재? [사라]전에 선생님이 말해주셨거든. 뛰어난 무용수는 뛰어난 기량 뿐만 아니라, 춤으로 인생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야. [사라]하지만 내 경험만으로는 춤에 인생을 담아내긴 힘들거든. 그래서 나는 오늘처럼 어르신들로부터 과거 이야기를 전해 듣곤 해. 다양한 인생 이야기가 내게 영감을 줘서 새로운 춤을 만들게 하거든. [player]그렇다는 건, 너의 춤 안에는 여러 어르신들의 삶이 담겨있다는 말이네? [사라]아주 적절한 표현이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게 바로 '이방인'의 삶이라곤 하지만, 그들도 저마다의 낭만과 멋을 가지고 있어. 나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멋진 부분들을 따와서 후대에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런 역할을 자처하게 되었어. [사라]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향'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 위함이야. [player]고향? 하지만 네가 아까 전에 고향에 대한 건 전부 잊혀졌다고 하지 않았어? [사라]예전에 어머니가 고향은 자연 경관이 굉장히 아름다운 곳에 있다고 했어. 그곳엔 아데니움이라는 이름의 불꽃을 닮은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해 있다고 하시던데, 내 눈으로 직접 고향의 경치를 보고 싶어. [사라]Soul극단에 가입한 건 공연을 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투어를 하며 고향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함도 있었어. 사라에게 고향에 대한 단서를 찾은 게 있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그녀가 쓴웃음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러지 못한 모양이다. [사라]아쉽지만 아직은 못 찾았어. 어쩌면…… 이번 생은 틀렸을지도, 후훗.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처럼, 우리 민족이 고향을 떠나고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으니까…… [player]……그렇다면 내일 다시 그 할머니에게 고향에 대해 물어보러 가는 건 어때? 아니면 그 어르신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사라]그것도 어려울 것 같아. 이 사람들은 내일 아침에 여길 떠나기 때문에 오늘 밤이 이 장소에서 열리는 마지막 연회거든. 때문에 연회가 아마 아주 늦게 끝날거야. 이제 슬슬 피곤할 것 같은데, 역까지 데려다줄까? [player]그런 거였구나…… 이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내일이면 떠난다니, 이제야 이 사람들과 좋은 관계가 됐는데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릴리아가 아까 사라의 새로운 옷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슬퍼 보였던 건, 본인도 완성품을 보지 못할 걸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거구나…… [player]사라, 나도 여기 남아 있어도 될까?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대접받았는데, 내일 아침까지 남아서 제대로 작별 인사를 전하고 싶어. [사라]후훗, 당연히 괜찮지. 식사가 끝난 뒤, '이방인'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사라는 나를 위해 묵을 곳을 찾으러 떠났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그들이 펼치는 연회를 감상했다. 그들의 사뭇 이국적인 노래와 춤을 감상하던 중, 갑자기 뇌리 속에 세 글자가 떠올랐다. [player]아데니움…… 나는 휴대폰을 열어 아데니움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데니움, 이 꽃의 별명은 사막 장미, 자생지의 분포로 미루어봤을 때 이한시에서 나는 식물은 아니다. [player]이한시에서 사라에게 아데니움을 보여주긴 불가능하겠네. [미쨩]미야옹~ [player]응? 주변을 둘러보던 중, 모닥불 빛을 빌어 간신히 미쨩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녀석은 언제나처럼 유유자적하며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고 있었다……